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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 베드사이드 프렌드는 김연수입니다. 수필집에다 알콩달콩 자기 이야기를 참 잘도 풀어내 놓은 이 남자는 뭐랄까, 좋아하는 작가로 삼기엔 너무 신비감이 부족하지만 그냥 잠 안 오는 밤, 옆에 누워 이야기를 들려주면 참 재미나겠다 하는 생각은 듭니다. 79년생 독자와 70년생 작가의 '비극적 운명'이겠지만, 나도 다 아는 이야기를 '풍을 섞어' 들려주는 그이한테선 '못난 복학생 선배'의 냄새가 난달까요. 그래서 그가 저라는 독자에게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는 이부자리 친구 정도입니다. 정색하고 앉아 밑줄 그으며 읽는 작가의 자리는 넘보지 못할 거란 이야기지요. 하지만 저는 그가 참 부러운데, 풍이 섞인 복학생의 무용담이든 잠들기 전에 읽는 가벼운 에세이든, 그는 고백에 따르면 "한 시간에 서너 편씩" 글을 써 내려갔고 그래서 지금 작가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야 심술궂은 마음에 흥, 하고 콧방귀를 날리지만, 그는 어쨌거나 명실상부한 최고의 인기 작가이지요. 또, 심술궂은 마음에 "우리 문학이 참 말세지. 대단찮은 재능으로도 저렇게 이름을 날리니" 하고 말지만, 사실 그가 제 지청구를 들을 만큼 엉터리 작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그를 애써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작가로 살고 있는 그에게 질투가 나기 때문입니다. 오정희 정도야 힘들겠지만, 나도 키보드만 두드리면 김연수 정도는 써 내려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질투심 말입니다. 어쩌면 저는 작가가 되고 싶은 모양입니다.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전에도 내 마음 나도 몰라, 하며 당혹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뭐냐면…. 회사 이웃팀에 손금을 잘 본다는 신입사원이 들어왔어요. 실제로 용하다며 짬이 날 때면 몇 사람씩 몰려가 손금을 보곤 했지요. 마침 회식이 있어 그날 모인 멤버들이 한 사람씩 손을 내밀어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한 가닥 힌트를 얻어 갔습지요. 저야, 원체 무심한 성격이라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쉬 흔들리지는 않는 편인데, 다행하게도 서른다섯부터는 부와 명성을 얻는다(!)는 좋은 운명을 점지 받았습죠. 헌데, 후배 하나한테 글을 쓸 손금이다, 하더군요. 그 소리를 듣는데 제 마음에 이는 소용돌이란. 돈을 잘 번다는 누구한테보다, 남편 잘 만난다는 누구한테보다 질투가 나더군요.
그러면서, 못난 인간아, 이젠 남의 손금마저 질투하냐, 했더랬습니다. 그렇게 글 쓰는 팔자이고 싶으면 글을 쓰면 될 것이지, 김연수부터 글 쓰게 생긴 손금까지 왜 그리도 질투만 하는 것인지. 그리하여, 오랜만에 읊어 보는 기형도의 시입니다. 너만 그런 게 아니다, 하며 위로해 주는 글입니다.^^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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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1년 디스코 섬에서 바다 안개가 빙원 횡단시 안전선 표시 목적으로 쓰는 카라비너(등산용 고리)의 부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단순히 고리를 줄에 걸어 매달아놓고는 세 달 뒤에 돌아와 보는 게 실험의 전부였다. 카라비너들은 여전히 튼튼해 보였다. 약간 녹이 슬긴 했지만, 그래도 튼튼해 보였다. 제조업자들은 고리를 끊어내려면 4천 킬로그램의 힘이 필요하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손톱으로도 고리를 떼낼 수 있다는 게 판명났다. 적대적 환경에 노출되어 그것들은 부서져 내렸다. 인간도 유사한 퇴보 과정을 통해 언어를 잃어버린다. 마을 학교에서 카나크로 이사했을 때 우리는 그린란드어라고는 한 마디도 모르고 습득할 계획도 없는 교사들에게 공부를 배웠다. 그들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덴마크 입국과 대학 입학 허가, 북극의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황금 같은 신분 상승의 기회는 덴마크어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60년대 정치적인 기초가 마련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린란드를 공식적으로 "덴마크의 최북단 지역"으로 받아들이고 이누이트들은 공식적으로 "북부 덴마크인"이며 "모든 다른 덴마크인들과 마찬가지로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수상이 말했을 때의 일. 이렇게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덴마크에 도착해서 여섯 달이 흐를 때까지는 절대 모국어를 잊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언어는 생각하고,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길인 것이다. 그러다가 거리에서 그린란드인을 만난다. 그 사람과 몇 마디를 나누게 된다. 그러면 갑자기 지극히 평범한 단어도 의식적으로 생각해 내야만 한다. 또 여섯 달이 흐른다. 어느날 여자친구가 뢰위 골목에 있는 "그린란드인의 집"에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그린란드어가 손톱으로도 떼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이사야의 테이프를 확인하던 스밀라가 그곳에 녹음된 그린란드 방언을 듣는 장면에서(문장 일부 수정) 김연수의 말마따나, 내가 아는 가장 매력적인 여인 "스밀라"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모국어를 어떻게 잊게 되는지에 대해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 대목은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에도 그대로 인용되며, 언어를 잃어 버리고 결국 세계도 잃어 버린 수많은 부족들에 대한 이야기의 첫 대목을 장식하고 있다. 나는 이민 1세를 보면 항상 연민의 마음이 들곤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자식들과도 '모국어'로 이야기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추억을 모국어로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그것을 '낯선 언어'로 떠듬떠뜸 이야기하는 장면은 충분히 슬프므로. <사라져 가는 목소리>에도 우비크어를 할 줄 알았던 마지막 인물, 테비크 에센크가 나온다. 그의 세 아이들도 터키어를 사용했으므로, 그도 모국어로 자식들과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언어를 이해하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홀로 남겨진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만큼 인류의 미래를 충심으로 걱정하는 책을 알지 못하며, <스밀라>만큼 '정확한 언어'로 그 걱정이 왜 정당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도 알지 못한다. 두 책 모두 일독을 권한다. (두 책 모두 번역이 깔끔하지는 못한데, <스밀라>의 경우는 문학서인데도 정도가 심해서 내 경우엔 이전에 까치에서 나온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 훨씬 잘 읽힌다. 물론 구판은 지금 헌책방에서만 구할 수 있다.) 아, 그리고 이렇게 장광설을 풀어놓은 이유는 EBS '지식 채널 e'에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이 소개됐기 때문이다. 저렇게 만들어진 것을 보니, 좋은 영상이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그 감동은 모든 '좋은 것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겠지만.^^
'지식 채널 e'에 소개된 영상은 아래에. 이어지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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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그 둘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둘 중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그 한 쌍과 말이다. … 그들이 가진 것, 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 그리고 나를 대하는 방식과 말이다. … 그들은 굉장하다. 내 남은 평생 매주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고 싶을 정도다. 닉 혼비, 《하이 피델리티 》, 주인공 로브가 여자친구 로라의 친구 커플에게 반하는 장면에서 당신들의 사랑과 결혼을 축하합니다. 수많은 청춘들의 연애사를 지켜봤으면서도 제가 왜 유독 호들갑스럽게 두 분의 만남에 흥분했었는지, 둘이 함께 있는 장면을 보니 잘 알겠더군요. 이미 뛰어난 직관으로^^ 두 분들의 행복한 결혼을 예감했던 것이 아닌가 스스로 대견해 하는 중입니다.
다른 것들을 동원해 제가 두 분을 얼마나 축복하는지 알려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가 동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질 않네요. 대신, 별것 아니지만, 여기 이 아름다운 문장 하나를 바칩니다. 주인공과 닮은 구석이 있어 자일님께 권하면 좋겠다 생각했던 책에서 이 문장을 발견하곤, 곧바로 두 분을 떠올렸습니다. 함께 만난 것이 몇 번 되지는 않지만, 당신들이 서로에게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것과 두 분이 함께 있을 때 더욱 빛이 나리라는 건, 단박에 알아봤거든요.
결혼이 '결론'은 아니라는 걸 잘 아는 나이라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참 많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두 분이라면 잘 하시리라, 그리하여 저로 하여금 사랑과 결혼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증명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당신들은 굉장하니까요!
p.s. 남은 평생, 일주일마다 두 번 만나 주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그만큼 보기 좋았다는 뜻입니다 ㅋㅋ 왜 요즘 블로그 안 하냐는 allure님 말씀을 듣고서야, 이곳에 다시 들어와 볼 용기를 냈습니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블로그를, 두 분을 축복하는 글로 시작할 수 있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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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를 두고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난 예쁘기보다는 못난 쪽에 가까운 사람이다. 거울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은 다행히 한 번도 없었지만(!) 어느 분께서 친절하게도 점수를 매겨 주신 적이 있었다.(그분들껜 늦었지만 육두문자를 바친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존경하던 교수님들의 수업이 끝나 버리자 하루라도 빨리 학교를 졸업하고 싶었던 난, 정말 '아무 곳'이나 오라는 데가 있으면 취직을 하려고 면접을 보러 다녔는데, 그 중 한 곳이 대기업의 건설 부문 계열사였다. 내가 건설회사라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나같은 덜렁이가 그런 델 갔다면 분명 부실 공사에 막대한 공헌을 했을 거란 생각에 아찔하기도 하지만, 당시로선 학교를 떠나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절실했다. 마침 이 회사 인사팀 몇명이 아예 학교로 리크루팅을 와 주었고, 덕분에 인사 담당자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끊임없이 체크 항목에 맞춰 점수를 매기는 모습까지도 관찰할 수 있었다. 거기에 놀랍게도 '외모'에 관한 채점 항목이 있었던 것이다. 이럴 경우 보통 담당자는 노련하게 채점표를 살짝살짝 가려 자신이 매긴 점수를 숨기기 마련인데, 불행하게도 나를 면접봤던 담당자는 초짜였고, 또 불행하게도 마침 그가 '외모'란을 체크할 때 내가 그걸 봐 버렸다. 체크란은 '상-중-하'로 나뉘고 각 항목이 다시 '상-중-하'로 나뉘어져 '상-상'부터 '하-하'까지 모두 9단계로 돼 있었는데(다시 한번 아낌없는 육두문자를!), 면접관은 처음 내 '외모 점수'를 중-중으로 체크했다. 난 속으로 기분이 나빴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 매력도 발견할 것이고, 뭐 친밀감이 쌓일 수록 사람도 예뻐 보이는 법이니 한 삼십분 대화하다 보면 나를 달리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참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린 정말 화기 애애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고, 드디어 면접관은 내 외모란 점수를 쓱쓱 그어 버리는 것이었다. "음하하, 드디어 내 매력을 발견하셨군. 이야기하다 보니 첫인상보다 예뻐 보였던 게야" 하며 만족하려는 찰나, 그는 예상과 달리 도리어 '중-하'에 표시해 버렸다.--; (어쩐 일인지 '중-하' 외모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 최종 면접까지 합격했으나, 정신 차리고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냐며 입사하지 않았다. 그러니 누구든 과천에 본사가 있는 그 대기업 건설 회사엔 절대 가지 마시라. 여성이라면 그런 류로 평가 받아야 할 것이고, 남성이라면 못된 버릇만 배울 터이니.) 생각해 보니 욕지기가 나오는 기억인 탓에 말이 길어졌지만, 처음 내가 말하려고 했던 건, 굳이 이야기하자면ㅋ 나는 '평균 이하의 외모'라는 말이었다.
그때 난 처음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받았던 것 같은데, 당시 만나던 분이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내가 전지현에 버금간다고 착각하도록 감언이설을 내뱉었던 (척이라도 했던) 덕에, 나는 나를 부정하지 않고 내가 뭘로 보나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건강한 생각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평균 이하의 점수'에도 불구하고, 내 외모에 대해 컴플렉스를 느꼈던 기억은 많지 않다.
오히려 최근 몇년 내가 컴플렉스로 느꼈던 부분은 내 '성격'이다. 이렇게 고백하면, 대부분은 내가 사람들을 다루는 데 능하고, 누구와도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실지 난, '직장 1년차'를 통과한 이후의 내 성격에 절반의 자부심과 절반의 컴플렉스를 느껴 왔다. 난 그 전까지, 그러니까 나면서부터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맏딸 컴플렉스와 착한 여자 컴플렉스에 시달려 왔다. 온갖 어려운 일은 자청해 다 내 몫으로 맡았고, 동기들의 언니-누나 노릇을 했으며, '배려'를 인간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어땠냐면, 대학 신문사 생활을 하던 때 난 늘 두 학번 선배들과 더 편하게 지냈고, 철없던 친구 하나가(지금은 지금은 철 들었다^^) 길가다 발견한 가방이 갖고 싶다며 애지중지하던 내 돼지 저금통을 털어 달라고 요구했을 때 기꺼이 내줬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부모님께 돈을 받아 쓴 적이 없는데, 한 번은 신문사 생활과 과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어 엄마에게 과외를 몇달만 쉬면 안될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는 해야지"라던 엄마의 대답에 지금도 섭섭함을 느낀다. 서울에 직장을 구하면서 달랑 종이 가방 두 개와 과외로 모은 100만 원을 들고 올라 왔다. 방을 구하는 일부터 모두 내가 처리해야 했는데, 겨울날 그 방을 잡고서 침대에 엎어져 울던 기억이 너무 선명하다. 그 고시원에 살며 일해 번 내 첫 월급은, 엄마를 끊임없이 졸라 대던 여동생의 성형수술비에 고스란히 바쳐졌다. 스물넷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린 나이었다. 나중에 엄마는 내가 걱정되지도 않았수, 라고 물어보았는데, 엄마는 생긋 웃으며 넌 원래 그랬잖아, 라고 말했다. 헌데, 몸에 맞지 않는 착한 여자 컴플렉스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피곤하게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스트레스 탓에 한때 대인기피증을 앓았던 것도 같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드센 성격과 함께, 아무에게도 진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법을 익혔던 것도 같다.
그러다 직장에 다니며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에, 정말 '치유'라는 것을 경험하고 이젠 극적인 변화를 거쳐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만큼 '나쁜 여자'로 거듭났다. --; 관계를 불편하게 할지라도, 동생에겐 생활비를 요구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상대의 언행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며, 무리한 요구는 거절할 줄도 알게 됐다. 그리고 난 지금의 내가 너무 좋다. 하지만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오늘의 '사건'이 없었다면 난 나쁜 여자로 돌변해 버린 내 성격에 자신없어 하며, 늘 마음 한 구석이 씁쓸했을지도 모른다. 사건이래 봤자 별건 아니다. 미학 스터디를 하며 알게 된 아는 언니는 평소 나와 이야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고백하곤 했는데, 오늘 내게 이야기하길, "이성이었다면 진심으로 사귀어 보고 싶은 사람이에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똑똑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폭력성이 없어서 너무 편안해요, 라고 언니는 말해 주었다. 이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자 태반은 깔깔거리면 웃어 버렸는데, 사실 나에겐 최고의 찬사였다. 내 최고의 친구이자 선생님이자 대화 상대는 내 애인인데, 이 언니에게도 나는 최고의 친구이자 선생님이자 대화 상대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한 여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이들인 탓에, 내가 편한 대로 행동해도, 처음부터 내 본래의 모습을 보여도,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나에게 위안을 준다. 이리 긴 글로 고백해 버린 내 성격 컴플렉스는 이제야 정말로 온전히 극복된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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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자의 이름은 최영숙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저녁이면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다리를 어쩌지 못해 쩔쩔매는 나를 위해, 내 남자친구는 기꺼이 집에 들러 안마사를 자처한다. 서른도 되지 않은 애가 모양새 좋지 않게 드러 누워, 옆으로 위로 좀더 세게 너무 아프잖아, 까다로운 주문을 해 대도 그닥 싫은 소리 않는 그가 고맙지만, 그래도 남자친구가 내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허릿병을 앓을 적은 있지만, 나처럼 흔히 '여자가 나이 들 때' 나타나는 증상들은 겪고 있지 않은 탓이다. 내 나이를 알고 있는 이들은, 내가 아무리 다리가 아프네, 무릎이 아프네, 하고 골골거려도 그저 웃고만 만다. 엄마 말마따나 발발거리고 돌아다니느라 밥을 잘 안 챙겨먹어서인지 대학 시절부터 올초까지 근 8년 동안 밤샘을 밥 먹듯 해서인지, 내 몸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일찍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엄마의 아프다는 비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어린-건강한-남자인 이들은 대게 '무슨, 벌써' 하며 순간 날 엄살쟁이로 몰아 버리기 일쑤다. 실은, 저린 다리를 어쩌지 못해 대부분의 밤을 설쳐야 하는데도. 그래서 "모든 여자의 이름은 쓸쓸하고 가없이 슬픈 몸"이라는, 고작 마흔세 해를 살다 간 최영숙의 문장이, 아프다. 역시 마흔세 해를 살다 간 고정희의 제자 최영숙은 루프스를 앓다 죽음을 맞은 여성 시인이다. "여자의 자궁이 연상되는/ - 루프스는 자기면역질환으로 전신성 홍반성 낭창이라고도 한다 루프스와 같은 자가면역질환은 바이러스, 세균 등의 항원에 대하여 항체를 만드는 면역체계가 무너진 것을 말한다…."('치명적인 너무나 치명적인' 중에서) 의학사전에나 나올 법한 루프스의 증상으로 시를 써 낼 만큼, 최영숙은 참 지독하게 앓았던 모양이다. 이 루프스를 앓은 이들의 대다수가 여성인데, 그래서인지 발문을 쓴 나희덕의 말처럼 루프스는 여성이 겪는 모든 질환의, 혹은 여성의 삶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최영숙의 문장과 나희덕의 발문에 온전히 공감한다. 나는 언제나 여성이었지만, 그것을 ‘자각’하게 된 데는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육체적 고통의 영향이 컸다. ‘늘’ 아프기 전, 나는 그저 아이였고 학생이었고 젊은애였을 뿐, 약해빠진 육체를 타고난 여성임을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건강했고, 인내심이 강했으며, 강한 힘 따위가 필요한 때는 그다지 많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물리적으로 나이를 먹으며, 난 또래 남자 동료들보다 쉬 지쳤고, 이를 악물고 밤새 버텨 내고 나면 앉아있기조차 곤혹스러운 다음날을 맞아야 했다. 어느 곳에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특별한 병도 없는데 늘 아픈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난’(이 말은 곧 아픔을 게으름의 핑계로 삼는다는 누명을 씌우는 것이었으므로)하는 이들이 있다. 내 주위에도 다른 누군가의 고통(혹은 핑계거리?)에 대해 쉬 이야기하는 이가 있었으므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열등한 ‘여성’으로 인식되지는 않겠노라 생각했으므로, 결국 ‘나가떨어질 때까지’ 버티다 진짜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나가떨어진 후 일년 내내 내 다리를 주물러 온 이가 준비한 다섯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 《모든 여자의 이름은》. 그 책이 나에게 선물한 것은, 한없이 끌어안고 싶은 모든 여성들에 대한 동지애와 연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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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장정일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 이 글의 제목 장정일에 대한 명상은 물론 그의 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서 빌려 온 것이다. 왜 갑자기 장정일이냐고? 물론 얼마 전 그가 낸 이 책 <공부>를 읽고 있기 때문이지만, 사실 내가 <공부>와 동시에 읽고 있는 책은 열 권도 더 되므로(이건 뭣 하나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뜬금없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나는 장정일의 오랜 팬인데, 지난 토요일(그러니까 12월 9일) 드디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그를 '알현'한 것이다. 저자 사인회는 아니고, 그는 그저 클래식 음반을 고르러 교보문고 핫트랙을 둘러 보고 있었다. 사실 장정일은 만나기 쉬운 작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대구 시절(그는 올 3월부터 서울 동덕여대 초빙교수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교보문고에 얼굴을 드러냈다 하고, 나 역시도 '대구에 풀어 놓은' 몇몇 지인들을 통해 목격담을 전해 듣곤 했다. 게다가 그는 <공부> '모짜르트 편'에서도 잠깐 언급한 '모 클래식 사이트'에도 글을 남기곤 했는데(고클래식이라는 사이트다. 그는 클래식 마니아이고, 나 역시 그처럼 이 사이트의 회원이다), 그가 '회원'으로서 글이라도 남길라치면 나는 두근두근 팬입노라 댓글을 남기고 싶으면서도 짐짓 모른체하곤 했다. 그것이 예의일 것 같아서. 어쨌듯 그렇듯 '사모'해 온 분을 바로 코앞에서 뵀지만 나는 이번에도 사인을 해 달라기는 커녕,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도 눈이라도 마주칠라치면 황급히 고개를 돌리곤 했다. 역시, 그게 예의일 것 같아서.(혹 장정일의 팬이 있을까 하여 덧붙이자면, 그분은 참 특이하게 시디를 고르셨다. 우선 열심히 둘러 보신 후 시디 케이스를 마구 흔들며 소리를 '들으셨는데' 처음엔 저게 뭘까 했다. 그러다 기억을 더듬어 새로 산 시디도 깨져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있다는 고클 누군가의 글을 기억해 냈는데, 아마 그걸 검사해 보신 게 아닌가 싶다.)
솔직히 장정일이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내 경우 세련되고 아름다운 글쓰기를 매우 선호하는데, 장정일이 그 기준에 부합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 중 요즘 읽고 있는 <공부>를 제외하고 내가 읽은 책이라곤 초기 시집 몇 권과 <독서일기> 1권,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에 수록된 잠깐의 인터뷰, 그리고 다른 여러 작가들과 함께 쓴 <나의 나>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팬이라고 자부한다. 그건 내가 그가 쓴 글의 열렬한 팬은 못될지라도, '장정일이라는 사람'의 열렬한 팬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나의 나>를 읽었을 때부터였다. 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10년도 더 전에 읽은 그 짧은 에세이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그전까지 아마도 장정일을 '야한 책을 쓰는 작가'나 '학력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뭐든 무섭도록 읽어제끼는' 작가라고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억하건대 <나의 나> 역시 당시 탐독하던 신경숙을 읽기 위해 산 책이었다. 헌데, 이 책에서 신경숙을 잃은 대신(이 책부터 시작해 신경숙은 언제나 '전작이 더 나은 작가'가 돼 버렸다) 장정일을 얻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장정일은 '여호와의 증인' 교도이다.(책이 고향집에 있는 터라 기억에만 의존하자면) 그의 집안이 모두 여호와의 증인을 믿고 있었지만 그가 애초부터 '교도'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 교련 시간에 빠지기 위해 스스로 여호와의 증인을 믿었고, 같은 이유로 고등학교 진학 역시 포기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그는 '교련 시간'이나 그가 혐오해 마지 않던 '군대'보다도 더 끔찍한 소년원 생활을 해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성간 성폭력을 비롯 온갖 종류의 파시즘이 난무했던 소년원 시절에 대한 부분까지 읽으며, 그의 글과 '공부'가 어떤 진정성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후로 난 그의 조용한 지지자가 되었으며, 비록 그의 글을 빼놓지 않고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잘 지내고 있는지 늘 궁금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그가 동덕여대 초빙교수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쾌재를 불렀다. <우리**>에 근무할 때부터 꼭 한번 인터뷰해 보고 싶은 인물이었지만, 결국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퇴사한 아쉬움도 일거에 날려버릴 만한. 중졸 학력의 소유자가 소설가를 거쳐 교수가 되었다는 것은 그 작은 한몸(실제로 그는 참 작고 약해 보인다)으로 그 튼튼한 기득권을 전복시켰다는 뜻이다. 장정일은 그런 사람이다. 그러하니, 어찌 그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그의 잘 다듬어진 '독서일기'이자, 훌쩍 성장한 '나의 나'이다. 장정일은 서문에서 '자신의 시인이었으므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얼마전부터는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 책은 그 '공부의 기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 (얼마 읽지는 않았지만) <독서일기>가 그저 읽어제낀 기록으로 느껴졌던 반면, 이 책에서는 '왜' 자신이 그 주제에 대해 공부를 했는지에 대한 기록에서부터 시작해, '어떻게' 공부했는지까지 살펴 볼 수 있다. 그야말로 글 하나하나가 하나의 작은 레퍼런스인 셈인데, 나 역시 그의 가이드에 따라 책을 한두 권씩 따라 읽는 중이다.(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광고가 낯간지럽고, 그의 고백처럼 '파일을 날려 버린 탓에' 영 쓰다 만 듯한 글도 있다만, 모두 용서하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는 두 가지인데, 그 하나는 그가 자신의 병역거부의 역사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며 그 관심을 '우리 사회의 봉건성과 국가주의'로까지 넓혀 <나의 나> 때보다 훨씬 더 성숙한 시각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잠 못 이룬 그 밤, 잠 못 이룬 사람') 이것은 그가 정말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둘째 이유는, 그가 '공부라는 행위'가 지닌 '의미'를 너무나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로부터 내 일과 내 생각에 대해 일종의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교육 잡지에서 오래 일했고, 교육이 세상을 바꾸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러나 세상이 하 수상한 탓에 이런 생각은 끊임없이 위협을 받곤 하는데, 그는 '교양; 지식의 최전선'이라는 글에서 교육이, 글을 읽는 능력이 '세상을 올바르게 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언함으로써, 나를 위로해 준 것이다. 글이 아니라도, 그 자신이 바로 그 '증거'이지만 말이다.
꾸벅 인사나 할 걸, 하고 아쉬워하는 중이지만, 먼발치에서 그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주말이다. 무슨 음반인가를 들고 케이스 표지에 관해 묻는데, 클래식 코너에서 일하는 분이 왜 그렇게 부러운지. 다음주에도 핫트랙 가서 '스토킹'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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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성정치 캐럴 J. 아담스 지음, 류현 옮김/미토 | '유행'이라면 언제나 남에게 뒤쳐지는 편이었지만, 최근 사람들에게서 회자되는 화젯거리를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유행을 앞서 나가는 사람'이 된 듯하다. 채식 말이다. FTA 이야기에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 문제로 화제가 이어지는 듯하더니, <한겨레 21>과 KBS 어딘가에서 소를 비롯한 동물이 얼마나 잔인하게 '생산'되는지 를 다룬 후부터는, 주변 사람들과 심심찮게 '채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특히 내가 중간에 끼어 있으므로, 환경, 건강, 아이(의 아토피) 이야기만 나오면 어김없이 화제는 '육식의 비인간성'으로 넘어간다. 그렇다, 난 채식인이다. 물론 아는 사람만 알고 있지만.
물론 처음 채식을 시작할 때에는 주변인들에게도 이렇게나 좋은 '채식'을 권해야겠다는 다부진 마음을 먹었지만, 채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하게 지내던 선배로부터 내심 상처를 받고 난 뒤로는 난 그저 눈에 띄지 않게 끼니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아, 별일은 아니었다. 선배는 그저 '그럼, 넌 시금치의 생명은 돼지의 생명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니'라고 물었을 뿐이다. 늘상 받는 질문이지만, 그 선배조차 '그런' 질문을 던졌다는 것은 큰 놀라움이었다. 그건 '그저 채식을 선택한 네가 불편하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아 난 대답하기를 포기했지만, 지금에라도 대답하자면, 물론 나에게 두 생명은 다르다. 둘다 소중하지만, 시금치가 훨씬 더 고통에 덜 민감하다고 믿고, 그래서 미안하고도 감사하게 채식을 한다.
다시 '내 채식의 역사'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조금이나마 채식에 호의적인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내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왜 채식을 하게 됐느냐'이다. 주변 채식인들을 봐도 그렇듯, 물론 내 이유도 '복합적인 것'이다. "과수원을 지다나 사과를 뚝 따서 먹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닭의 다리를 북 찢어 먹는 것은 이상해 보이듯"(헬렌 니어링, <소박한 밥상>) 채식이 훨씬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고, '고기'가 한때 살아서 울부 짖던 '동물'이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장담컨대 "우리가 고기를 먹기 위해 직접 동물들을 죽여야 한다면 햄버거를 그렇게 함부로 먹지는 못할 것"(구스 반 산트의 영화 <말라 노체>의 대사 중)이다. 이유는 그것뿐이 아니다. 대형 마트에 쌓여 있는 그 엄청난 양의 고깃덩이와 육가공 식품들을 '공급'해 주느라 동물들은 "움직이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성장촉진재를 맞아 가며"(존 로빈스, <육식혁명>) 연한 고기를 생산해 내고 있다. 한데 모인 동물들이 '고기'와 함께 생산해 내는 그 엄청난 환경오염 물질들은 어떻고! 그 장면을 떠올리며, 어떻게 고기를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우유와 계란도 먹지 않는 '베전'인데, 한때 계란을 엄청 좋아했음에도 좁은 닭장 안에 갇혀 윗층에 갇힌 닭'들'의 배설물을 고스란히 맞아 가며 오로지 알만 낳는 닭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계란을 입에도 대지 않게 됐다. 그렇다면 우유는 왜? 이것이 바로 내가 채식을 시작한 '진짜' 이유이자, 내가 이 책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오래 되지도 않은 '내 채식의 역사'를 들먹인 이유이다.
고백하자면, 대단한 육식가는 아니었어도, 나 역시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간절히 삼겹살을 원하던 평범한 식생활의 소유자였고, 고기를 먹지 않으면 자연스레 '몸이 그것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두 사건이 나에게 '동시'에 도착했으며, 나는 일순 동물을 '착취'해 얻은 어떤 것도 먹지 않기로 마음 먹고, 실행에 옮겼다.(물론 입거나[가죽 옷이나 모피] 들지도[가죽 지갑과 가방..가방 ㅠ.ㅠ] 않을 것이다.) 그 첫째 사건은 후배와의 대화였고, 둘째 사건은 그 후배와의 대화 바로 직전부터 우연히 읽고 있던 이 책 <육식의 성정치>이다. 우리 둘은 무슨 공연을 보고 나오다 이래저래 사는 이야기를 하게 됐고, 결혼과 출산까지 대화의 소재가 이어졌으며, 후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다. 후배는 극심한 생리통으로 보건대 자신은 아이를 낳지 못할 것이며, 심지어 아이가 자신을 해칠 것 같다는 공포에 시달린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다, 그저 무심결에 덧붙였다. "언젠가 아이를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육식을 하면서도 공포스러워 하지 않는다니…." 난 여성이므로 언젠가 아이를 가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육식도 하고 있었는데 이전까지는 전혀 공포스럽지 않았으므로, 이 스쳐지나가는 말이 좀 '찜찜하게' 들렸다. 그리고 뭔지 모르지만 '아이를 낳을 수도 있는 사람이 고기를 먹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생각해 보면 일종의 계시처럼, 내 책상에는 마침 첫 장만 읽은 <육식의 성정치>가 놓여 있었고, '캐럴 J. 아담스'는 왜 그게 '공포'스러운 일인지 충실히 각인시켜 주었다. 후배가 말하던 공포가 이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아이를 낳을지도 모르는 육식가였던 나에게 이 책에서 발견한 '공포'의 실체는 간단했다. 최고급 육질의 송아지 고기는 새끼를 낳고 눈물을 흘린다는 암소로부터 빼앗아 온 것이고, 우유는 자신의 새끼를 위해 젖을 생산하는 젖소로부터 젖을 빼앗는 것이다.(물론 이 책이 이렇게 유치한 도식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것이 맨 처음으로 내가 우유를 마시지 않게 된 이유이다. 실제 젖소는 젖을 생산하기 위해 임신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암소가 태어나면 어미와 분리돼 제 어미와 똑같은 과정을 거치고, 숫소가 태어나면 바로 도살장으로 직행한다. 젖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운명을 아는 어미소는 숫소를 낳자마자 울부짖는다고 한다. 당신이라면, 그리고 당신이 여성이라면, 어떻게 육식을 고수할 수 있겠는가. 내 역시 그 사실에 '눈을 뜨자'(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서야 이게 뭘 뜻하는지를 알게 됐고, 또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에 대해 '눈떴다') 우유를 마실 수 없게 되고, 고기도 먹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나처럼 페미니즘에 관해 조금의 지식밖에 없는 이들에게도 그 이름이 허락된다면(조이여울은 페미니즘은 지식이 아니라 성찰이라 했던가),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경상도에서 자란 여성이고, 맏딸인데다, 아직까지도 희생을 강요받고 있으니, 당연하게도. 내가 '공포'라는 말에 '반응'을 보이고 다시 책을 집어 들게 된 것은, 이 책에 따르면 아마도 동물이 착취되는 구조와 여성이 착쥐되는 구조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평생 희생을 강요당하고 착취되고 오로지 수단으로 이용되기 위해 존재해 온 것이 바로 여성들의 삶 아니던가. 더군다나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모든 '소수'를 위한 학문임을 생각해 본다면,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분명 어떻게든 페미니스트적인 의미를 반영하고 있을 듯하다. "바르트키는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보다도 사물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반대로 페미니스트들은 동일하게 보이는 것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10-11쪽) 남성이 지닌 폭력성의 기원을 육식에서 찾아 보고 싶은 이라면, 혹은 반대로 육식의 남성성을 연구해 보고 싶은 이라면, 일독해 보시길. 그리고, 채식의 세계로 입문해 나와 연대해 주시길. 채식의 길은 외롭고도 험해 동지가 필요하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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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에서 오랜만에 청탁을 받고 마감 기한을 무려 일주일이나 넘겨 그저께, 그러니까 18일 날에야 원고를 주었다. 취재라고 해 봐야 책상머리에 앉아서 클릭 몇 번으로 해결될 것들이라 원고를 쓰는 데 특별히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데도, 언제나처럼 '정말' 마감이 닥쳐야 글을 쓰게 된다. 편집자도 괴롭고, 쓰는 사람도 괴로운 일. 이럴 때마다 다짐하는 것은 '청탁 받은 글은 미리미리 쓰자'는 게 아니라 '앞으로는 절대로 청탁에 응하지 말자'이다. 모 기업체 사보 <두*>는 편집자의 '구라' 탓에 매월 초에 마감하지만, 것도 원래 말한 기한 보다 일주일씩 늦는 게 다반사. 편집기자 노릇을 해 본 터라 뺀질거리는 필자가 얼마나 얄미운지는 잘 알고 있지만, 마감 못지키는 필자도 못지 않게 괴롭다. 일상이 흐트러지는 건 물론이고 내가 세상 다시 없는 못난 인간이라고 자책까지 하게 되니, 기회비용으로만 따져도 원고료의 세 배는 될 거다. 마감 못지켜 괴로울 때마다 '먹고 살게 죽어라 없다면 모를까 천하의 명문을 구사하는 것도 아닌데 이제 그만하자' 다짐하지만, 청탁이 오면 딱 5초 고민하다 응하고 말 거다. 글 쓸 때의 괴로움은 금방 잊는 반면, 청탁 못해 발 동동 구르는 편집자의 괴로움은 선명한 기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딜레마.
2. 얼마전부터 사는 낙이 없다 싶어 '왜 이러나' 곰곰 생각해 봤더니, 식상한 이야기지만, 꿈이 없어서인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50년 후, 그 다음엔 30년 후, 대학 땐 4년 후, 뭐 그런 것들을 꿈꾸며 살았는데, 이젠 고작 꿈꾼다는 것이 1년 후에 빚을 다 갚으면 뭘 산다거나, 다음 책이 나온 후엔 코가 삐뚤어지도록 잠을 잔다거나 하는 것들이다보니 가뜩이나 야망이 없는 나로선, 세상에 낙이 없을 수밖에.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내년 8월에 '거사'를 치르자는 것이었는데 거사에 필요한 '일일 공부 계획'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 퇴근 후엔 밥 해 먹고, 배불러서 자고, 헐레벌떡 일어나 출근하고, 집에 가서 공부하자 하는 날엔, 꼭 데이트를 하잖다. 원래 뭔가를 하려면, 몸에 익을 때까진 세상 죽어도 그것만을 생각해야 한다는데, 역시 야망 없는 이 내 인간, 모질지조차 못해 큰일이다. '낙' 없이 살지 않으려면, 좀 다잡아야 할 터인디.
3. 회사를 그만 둬야 겠다는 생각을 하루 세 번씩은 한다. 물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투정이다. 맨 처음은 아침에 일어날 때. 원래 아침형 인간이었건만, 절대 8시 30분 이전에 일어나지 못하는 관계로, 지각하지 않기 위한 최고 마지노 선인 8시 40분까지 버티다, 옷만 입고 집을 나선다. 세수는 회사에서. 원래 맨날 샤워하며 머리를 감아, 그걸 못하고 가는 날엔 하루 종일 샤워 생각에 괴로웠는데, 이젠 것보다는 5분 더 자는 게 중요하다. 그래도 알람은 여전히 6시부터 10분 간격으로 맞춰져 있다. 말하자면 6시부터 8시 40분까지 내 자신과 처절하게 싸운다는 말이다. 그래서 8시 35분쯤 오늘 아프다 하고 회사 나가지 말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39분엔 회사를 때려 치우자, 하고 생각한다. 40분엔 그 무시무시한 유혹을 떨치고 일어나 옷을 주워 입고, 회사로. 비루한 인생이노니. 다음은 2시 30쯤. 이때쯤 다리가 탱탱 부어 앉아 있기 곤혹스러워지는데, 졸립기까지 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정도가 아니라 그저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마지막은 지금 이 시간. 여전히 교정지는 산더미인 채로 회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고, 세워 놓은 공부 계획은 하나도 지키지 않았는데, 슬슬 잠까지 온다. 이때는 회사만 그만 두면 정말 열심히 공부할 텐데, 라는 생각이 간절한데, 그렇게 내 자신에게 속고도 여전히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내가 신기할 따름이다.
4. 처음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제일 솔깃했던 것은 이 회사가 '고급 인문서와 철학서'를 내 온 출판사라는 점이었다. 철학 문외한이라는 데 답답함을 느껴왔고, 공부를 더 하려고 해도 철학책은 읽어야 해, 라고 순진하게 생각해 온 난, 철학 공부도 하고 돈도 버니 더 이상 좋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난 플라톤과 스피노자와 헤겔과 니체가 꼴도 보기 싫다. 누구는 '자발적으로 나치에 동조한 하이데거를 보라. 이것이 인류에 대한 철학의 공로란 말인가'라며 철학의 무용함을 설파한다는데, 나는 그것까진 아니고 철학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철학적인 것 같지는 않다는 순진한 이유에서이다. 적지 않은 책을 만들어 왔는데, 이제껏 날 감흥시킨 문장은 고작 10개나 될라나. 저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게 '확실한' 한국형 철학자들의 뒤를 봐 주고 있자니,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에서의 '공부도 하고'는 전혀 흥이 나지 않는다. 물론 '돈도 벌고'는 일찌감치-.,-.
이래저래 고단한 일상이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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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에 들렀다 난데없이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 혼쭐이 났다. 무방비상태로 갑자기 '그 문장'을 만난 탓에, 반쯤은 눈물을 참으며, 반쯤은 펑펑 눈물을 쏟고 싶어하며, 한참 동안 호흡을 골라야 했다. … 끝으로 살아 있었으면 내 또래가 되어 있을 YH사건의 고 김경숙 선생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그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올 초 출간된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의 서문에서 '그를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권혁범의 고백. 알다시피 김경숙은 1979년 YH사건 당시 노조상임집행위원이었던 이로, YH무역 폐업 공고에 반대해 농성중이던 8월 11일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내가 태어나던 그때, 180여명의 어린 여공들은 찬 시멘트 바닥위에서 농성하다 개처럼 끌려 나왔고 살아 있었다면 이제 겨우 권혁범의 나이가 되었을 김경숙은, 세상을 등져야 했다.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나는 누구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고 용을 쓰고 살았건만, 돌이켜 보니 쳇바퀴 돌듯,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못난 인간이 되어 있더라.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랫만에, 내가 부끄러웠다. 짜깁기 글이라 사지 않았을 책인데, 이 한 문장을 기억하고 싶어 굳이 사들고 왔다. 잊지 않고 살기 위해선 좀 더 날을 별러야 한다. 신경숙, <외딴방>, 문학동네 김원, <여공 1970-그녀들의 반역사>, 이매진 + 9/13 교보에서 더한 책 호메로스, <일리아드>, <오딧세이>, 펭귄 버지니아 울프, <혼자 만의 방>, 팽귄 캐럴 J. 아담스, <육식의 성정치>, 미토 권혁범,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 또 하나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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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윤대녕 지음/문학동네 | 잠자리에 누우려다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윤대녕의 책이다. 윤대녕은 잠자기 직전, 그러니까 독서 시간으로 따지자면 '황금시간대'에 읽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다. 딱히 본격적으로 윤대녕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고루해 봬는 문장 탓에 일찌감치 좋아하는 작가 명단에서 탈락한 이다. 하지만 단 한 권 예외가 있는데, 바로 이 책,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이다. 말하자면 여행 산문인데, 연애담 같기도 하고 그저 일기 같기도 한 이 책 덕에 윤대녕이라는 이를 그저 시시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오래전 읽은 책이지만 다시 뽑아들게 된 것은, 전** 선생이 얼마전 사무실에 들러 이야기한 카페 '여름' 때문이다. 노래하기를 즐기는 전** 선생은 우리 사무실에 들리기 얼마전 '여름'에 가 통기타 치며 노래를 불렀다 한다. 술 기운에 불러제끼는 그의 노래 '실력'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통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그 장면이 그닥 낭만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지만, 나는 '아, 여름!' 하며 아주 오랜만에 윤대녕을 떠올렸다. 실지 난 '여름'을 모른다. 윤대녕으로부터 들었을 뿐. "세종문화회관 옆으로 해서 미도파 빌딩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다 보면"(56p.)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의 이름을 딴 카페가 있는데, 그 근처를 한 달에 두어 번 지나치면서도 한 번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잠자리에 눕다 말고 수년 전 읽은 그 구절을 다시금 확인하고 싶어졌고, 이 책을 펼쳐 히한하게도 단박에 정확한 문장을 찾아버렸다. 조만간 광화문에 나가봐야 할까보다. 윤대녕이 찾은 곳은 네 곳 중 '가을'. 가을맞이 나들이 코스로 딱이다.
이 책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는데, 바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2악장 듣는 법>이라는 제목의 꼭지다. 이 책을 다시 펼치기 전 가장 기억에 선명했던 것은 7번 국도에 관한 꼭지였다. 7번 국도의 아름다움에 익히 감탄한 경험이 있었던 게 그 이유였을 게다. 헌데 이번 책 읽기에서는 제일 인상 깊은 꼭지가 바뀌고 말았다. 황제, 그것도 폴리니의 황제 2악장을 듣다 난 얼마전 문자 그대로 "이대로 죽어도 좋아"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네이버가 말하길, 그런 걸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한단다. 위대한 예술작품을 "접견하고" 엄청난 충격에 빠지는 현상. 혹자는 호흡곤란을 느낀다는데, 실지 나 역시도 호흡을 죽이다 급기야 "죽어도 좋아"라고 생각하게 된다. 정신이 맑은 날이면 듣는 족족 그러하니, 내가 이유 없이 죽어 있다면 힘들게 범인 찾을 거 없다. 그는 베토벤이다!
그렇다면 윤대녕이 권하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2악장 듣는 법. "거실에 앉아서 볼 수 있도록 오늘 사온 화분들을 베란다에 옹기종기 모아놓습니다. 게으르게 저녁밥을 해먹고, 차를 마시고, 거실의 불을 끄고, 소파에 앉아 화분을 내다보며 마우리지오 폴리니가 연주한 베토벤 5번 황제를 듣습니다. 폭풍이 휘몰아쳐간 다음 꿈꾸듯 2악장으로 넘어갑니다."(47p.)
책은, 감사하게도,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읽기만 하는 게 만드는 것보다 백만 배쯤 더 즐겁다는 게 내가 빠진 딜레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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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면
by ver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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